Archive of Artist Notes & Exhibitions
Statement
도도새는 300년 전에 멸종한 새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모리셔스라는 작고 아름다운 섬에 살던 그들은 원래 날 수 있는 새들이었지만,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여 비행능력을 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도도새들은 이들을 처음 발견한 포르투갈 사람들에 의해 결국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현대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들 또한 현실에 안주하여 이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이나 가치를 그저 의심 없이 수용하고, 거기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도도새가 ‘새’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하늘을 나는 방법을 망각했듯,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무언가를 어느 순간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지난 2015년, 도도새가 최종적으로 멸종했다고 알려진 모리셔스 섬을 직접 방문했습니다. 한국의 일현미술관에서 주최한 《일현 트래블 그랜트Ilhyun Travel Grant》프로그램에 선정되어 모리셔스 현지에서 한 달 간 머물며 도도새를 주제로 한 작업에 대한 조형연구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도도새를 매개로 하여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도새의 ‘도도Dodo’는 ‘바보’라는 뜻입니다. 그들을 처음 발견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새임에도 날지 못하는 그들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러나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도새들은 ‘날지 못하는 바보 새’가 아닌, 다시 날아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을 지닌 ‘알’과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비록 오래전 멸종했지만, 이제 캔버스 위에서 다시 태어나 멋진 모험이 가득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도도새들이 여러분에게 끝없는 상상력과 반짝이는 영감을 전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The dodo is a bird that became extinct more than 300 years ago. It was originally a flightless bird that lived on a small, beautiful island off the coast of Mauritius in southern Africa, but it became complacent and forgot its ability to fly, and was eventually hunted to extinction by the Portuguese who discovered it.
I thought this story had a message for modern humans. Just as the dodo gave up its identity as a bird and forgot how to fly, we can become complacent, accepting the world's standards and values without question, and one day forget what's really important to us.
With this in mind, in 2015, I traveled to the island of Mauritius, where the dodo is believed to be extinct. I was selected for the 'Ilhyun Travel Grant' program hosted by the Ilhyun Museum of Art in Korea, which gave me the opportunity to spend a month in Mauritius conducting research on the dodo, and since then, I have been using the dodo to tell a story about contemporary dreams, possibilities, and freedom.
Dodo means “dumb,” a name given to them by the Portuguese sailors who first discovered them because they were flightless, but I like to think that the dodos in my artwork are not “dumb, flightless birds,” but rather “eggs” that hold the potential to soar again. Although they are long extinct, these dodos have been reborn on canvas and have embarked on a new journey full of wonderful adventures, and I hope they will inspire you with their endless imagination and sparkle.
Bon voyage, 즐거운 여행 되시길
현대 사회는 공공기관, 교육, 미디어를 통해 '정상적인 인간'에 대한 정의를 끊임없이 내리고, 개인을 사회 시스템에 예속된 하나의 부속품으로 만들어낸다. 과거에는 이 시스템 속에 편입되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안정과 부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그조차도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처음 시도한 작업은 ‘새 인간’ 시리즈다. 머리는 ‘새’이지만, 몸통은 인간의 몸을 한 이미지로, ‘자유의지’를 상징하는 동물인 새가 날지 못하는 인간의 몸속에 갇혀있는 부자연스러운 형상을 통해 개체화되고 몰개성화된 현대인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2014년, 강원도 양양에 소재한 일현미술관에서 주최한 《일현 트래블 그랜트》 공모전을 계기로 나는 ‘도도새’라는 존재와 처음 마주하게 된다. 해당 공모는 선정된 작가에게 작품 연구를 위한 여행 경비를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공모전에 지원하기 위한 자료를 조사하던 중, 우연히 도도새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남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인근 모리셔스 섬에 살던 도도새는 본래 날 수 있는 새였지만, 풍족한 먹이와 천적이 없는 환경에 안주한 끝에 비행 능력을 잃게 되었다. 이후 이 섬에 처음 발을 딛게 된 포르투갈 선원들은 이 새들에게 '도도(바보)'라는 이름을 붙였고, 날지 못하는 도도새는 1681년, 인간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종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내게 있어 기존에 진행해 왔던 ‘새 인간’ 시리즈에서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결정적인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앞서 언급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사회가 제시하는 수많은 기준과 규격에 스스로를 맞춰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현대인들 또한 안락한 섬의 환경에 안주하여 결국 비행 능력을 망각하게 된 도도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실에 안주하여 이 세상이 제시하는 기준이나 가치를 그저 의심 없이 수용하고, 거기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도도새가 ‘새’라는 정체성을 포기하고 어느새 하늘을 나는 방법을 망각했듯, 인간 또한 그만의 고유한 특성을 구분 짓는 특별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도도새가 멸종했다고 알려진 모리셔스 섬으로의 리서치 여행을 기획하여 미술관 측에 제안했다. 결과적으로 이 계획이 최종 선정되어 지난 2015년 모리셔스로 떠날 수 있는 여행경비를 지원받게 되었고, 섬에서 한 달 동안 머물며 도도새와 관련된 기관, 장소 등을 방문하며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자료와 생각들을 기반으로 한 드로잉과 글쓰기를 통해 도도새를 매개로 한 조형연구를 진행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나는 도도새를 통해 현대인의 꿈과 가능성,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는데 주력하고 있다.
나는 나의 작업을 통해 앞서 언급했던 작업의 계기와 문제의식들에 대한 대답으로서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적인 사고방식을 제안하고자 한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이 언급했던 것으로, ‘떠도는 인간’이란 뜻이며, 인간은 방황 끝에 성장해 돌아온다는 것이다. 목적지와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여행일지라도 낯선 어딘가로 떠나는 행위는 우리에게 일상과는 전혀 다른 선택지를 제시한다. 여행을 하는 동안 사소한 경험에서도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의 나의 작업으로부터 그러한 여행의 신선함과 긴장감을 동시에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여행이란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두려움을 수반하기 마련이지만, 정해진 길을 벗어났을 때 펼쳐지는 수천 갈래의 길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수만 가지 새로운 생각과 멋진 상상력을 북돋아 준다. 때문에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도새들은 '더는 날지 못하는 바보 새'가 아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알'과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이 당신의 긴 여정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유쾌한 친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
Bon voyage! 즐거운 여행 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