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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way, Tromso, 2016. 01-02 / 

 

 

 

Dance of Lux prima

 

나의 이십대는 마치 키가 망가진 작은 조각배가 대양에서 갈 곳을 잃은 것처럼 끊임없이 표류하고 또 표류했다. 나는 늘 나 자신이 이 세상 속에서 좀처럼 제대로 춤을 추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속한 세상의 ‘보편적인’ 군무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춤을 추는 일이 수 천 조각의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어렵기만 했다. 어쩐지 나 자신은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울리지 않는 부조리한 풍경 같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고, 녹이 슨 기계에 기름칠을 하고 나사를 조이듯이 자신을 조금씩 고쳐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언젠가 돌아서서 안쪽의 나를 넘겨다보았을 때, 너는 여전히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서 작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거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렇게 나의 짧은 역사는 언제나 거기서 비롯된 비슷한 고민과 갈등과 번민 속에서 어떠한 하나의 공통적인 정신적 빈곤의 열병을 앓고 있었기에, 스스로 안에서 무수한 상처를 남기고 곪아갔지만 그 지독한 어둠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수많은 가면을 써야만 했다.

 

나는 현실과 타협하는 일이 자동차가 몇 번이고 짓이기고 가버린 검은 흙투성이 눈길처럼 경멸스러웠다. 그저 처녀설이 쌓인 성긴 소나무 숲길 사이를 언제까지나 총총히 걷고 싶었다. 내 삶이 그렇게 늘 신선하고 호기심에 가득 찬 숲 같기를 바라왔지만, 나의 욕심이 과하다는 생각과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들에 고통 받았고,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번민과 번복이 반복되고 주저하고 두려워졌다. 대체 어느 순간부터 이런 겁쟁이가 되어버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야.” 라고 했지만,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의 내가 이제 세상에 대해 다 안다고 착각했던 것과 같은 신기루 속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것만 같다.

 

스물아홉이 되던 해 겨울, 문득 오로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렇게 도망치듯이 떠났던 여행은 말 그대로 황망한 피신이었다. 이십대의 대부분을 소모해리고 나서야 무언가 정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 할 정도로 내 안의 것들은 여전히 갈 길을 잃고 먼지처럼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걷잡을 수 없었던 혼란이 나의 등을 떠밀었던 것이다. 마치 자신의 운명에 대한 의구심을 이기지 못해 신탁(神託)을 찾아 까마득히 먼 신전의 땅을 향해 떠나는 순례자처럼 끝없이 북쪽으로 향했다.

 

일상에서 나는 마치 꿈을 꾸다 만 것 마냥 몽롱하다. 어디엔가 출구가 분명히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수 백 개의 문이 서로 자신이 출구라며 수 백 개의 큰 소리를 지르고 있다. 그 꿈같지도 않은 꿈을 잠시나마 깨려 북쪽 세상의 끝까지 달려왔건만, 떠나오는 길 내내 그 고함들은 여전히 질긴 메아리가 되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충돌하며 끝없이 반향을 일으켰다.

 

북국의 도시 트롬쇠(Tromsø)는 하얀 도시였다. 나무도 없이 눈이 덮인 민둥민둥한 푸른 산과 차디찬 북해(北海)의 검은 물결이 풍경의 전부였고, 이곳의 흙은 원래 하얀 색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발을 디딜 때 마다 언제나 뽀드득 소리를 냈다. 그 백(白)의 성지(聖地)에서 보름 가까이 머물며 나는 밤마다 새벽의 빛, 에오스(Eos)를 찾아 헤맸다. 밤의 장막을 걷어내고 아침을 불러오는 새벽의 여신 에오스. 로마 신화에서는 아우로라(Aurora)라 불렸고, 캄캄한 밤하늘에 춤추는 빛의 장막을 그녀의 옷깃이라 여겼다. 여러 고전에서는 그녀를 ‘룩스 프리마(Lux prima)’, 즉 하루의 처음 빛으로 정의하며 이는 어둠을 물러내고 빛을 밝히는 재탄생의 의미를 갖는다. 태양과 달처럼 밝지도, 많은 이들이 우러르는 존재는 아닐지라도 새벽이 있기에 밤이 물러나고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살갗을 에는 바람이 몰아치는 얼어붙은 호수 위였다. 남포 빛의 산맥 너머에서 너울거리던 신령스러운 녹(綠)빛은 삽시간에 장막으로 변해 머리 위 밤하늘을 가득 채우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춤이 너무나도 황홀해서, 나는 그만 이대로 저 빛과 함께 하늘 저 편으로 사라져 영원히 춤을 출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태껏 그렇게 완벽한 춤을 본 적이 없었다. 중력조차 방해하지 못하는 자유롭고 숭고한 춤. 허나 나는 춤을 출 때면 자꾸만 발을 헛디디고, 스텝이 엉겨 다른 사람의 발을 밟고,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머리 위로 춤추는 그 빛이 그토록 질투가 났던 것은, 문득 눈물을 왈칵 쏟아내고 싶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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